솔직히


 재수한번 안해보고 인생 잘 사는놈도 있고


 재수하면서 고생 많이 하는 놈도 있을거라고 믿는다.



 난 부모님이 선생님이고


 하나있는 누님은 세살때 시를 짓는 신동이었다.



 나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멀어질수밖에 없었고, 


 나는 공부가지고 뭘 할수 있는 놈이 아니라는 인식을


 친척들 뿐 아니라 부모님도 했었다.



 그래서 어릴때부터 많은 것을 했지


 너네도 알다시피 어릴때부터 공부 잘하는새끼들은


 뭐 복잡한거 안시킨다. 속셈학원, 전과목 내신학원 이런거 다니지.


 

 난 바이올린, 트럼펫, 클라리넷, 피아노, 태권도, 단거리달리기, 수영


 말도못한다. 


 악기는 10개 넘게 해본거 같고, 그마저도 재능이 없어서 좆망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그나마 씬나게 한게 수영이었다.


 경남 XX시 대표로 나가서 도체전 20명중에 7등을 한게 리즈였지


 하지만 키가 안큰다는 이유로 고2때 반강제로 짤리게 된다.



 그당시에는 박태환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수영을 하는건 지금 창던지기를 하는 놈들이랑 다를바가 없었지


 애초에 미래도 없었고, 잘되봐야 찌랭이 선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걸 알았다.



 그래서 경남 XX상고 2학년 겨울부터 다시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행운아라고 느끼는게, 부모님이 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이다.


 부모님이 선생님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배려가 있었고, 환경적으로


 큰 무리없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도 그때 크게 정신을 차렸던 것 같다.


 하루 5시간 이상 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기숙사라고 하긴 뭐한, 나름 공부에 의지를 가진


 상고 찌랭이들을 10명쯤 모아놓은 집에서 살면서 공부했다.



 학교에서 10월 모의고사라고 불렀던(지금은 모르겠다) 시험을


 아무도 치지 않기 때문에 시험장이 없어서 옆학교에서 모의고사를 쳐야 했다.


 그때 받은 점수가 수리영역 18점이다.


 그 성적표는 아직도 어머니 방에 고이 모셔져 있다.


 

 그 이후 처음으로 대학 배치표라는걸 보았고,


 내가 갈수 있는 4년제 대학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목표를 경남대학교로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무려 100점 이상을 올려야 하는 싸움이었다.



 하루에 영단어는 기본으로 200개씩은 외운거 같다.


 150개를 까먹어도 하루에 50개는 외운 것이 된다. 이 공부법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수학, 언어 할것없이


 수업시간엔 공부하고 똥쌀땐 문학, 비문학 책읽고 


 잘때는 귀에 영어테이프 틀어놓고 잤다.



 그렇게 수능시험 날이 되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감독관이기 때문에 나를 배웅해주지 않았다.



 수능은 생각보다 쉬웠다.


 나의 점수는 364점이었다.


 어머니는 우셨고, 아버지는 내 손을 잡아주셨다.



 나는 1년 반 만에 210점에서 364점으로


 150점 이상을 올린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대학문은 녹록치 않았다.



 추운 겨울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암동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상기된 얼굴의 수험생들과 논술이라는 것을 보았다.



 고려대, 서울대, 한국외대.


 한국외대 영문과를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떨어졌다.



 나는 좌절하지 않았으나,


 아버지는 재수를 권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내 가능성을 아직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수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옛 제자인 박건호 선생(유명한 국사선생이라는데, 글쎄다. 잘 몰랐다.)


 의 추천으로 수능성적에 비해 좋은


 송파대성 인문 1반 종합반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곧


 처음 느끼는 성년의 자유에 매몰되고 말았다.


 

 눈치보면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고, 담배를 살 수 있었다.


 한 반에 여자가 반이었으며 (남중->남고), 귀여운 서울말을 썼다.



 연애도 하고, 나들이도 가고, 처음들어보는 브랜드의 옷을 사면서


 집에 송금을 요구했다.



 이번 일탈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그렇게 재수 후 수능을 치게 되었다.



 노력하지 않으면 급격히 떨어지는 과목이 뭔줄 아냐?


 수학이다.



 나는 언어, 외국어, 사회탐구(국사, 세계지리, 윤리, 사회문화)를


 단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수학이 死死점이 나오고 말았다.


 

 500점으로 바뀌어버린 수능 덕분에


 나의 점수는 444가 되었다. 그분의 숫자지.



 이 성적으로, 이 쉬운 수능에서는


 고려대 식품어쩌고 학과로 가거나, 외대에 복학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사죄했고,


 부모님은 속상함을 감추지 않으셨다.


 

 내가 재수할 무렵, 우리누나는 재수아닌 재수를 통해


 '시 한편'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의 억울함과 자괴감은 클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20년간 고등학교에서 지도해오셨다.


 다른데 갈 바에야 외대로 돌아가는게 낫다.


 그러니 상향지원을 해보자.



 서강대 경제학과, 서울대 인문2 이렇게 두 곳에


 원서를 쓰고, 논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서강대 경제학과에 최초합격 되었다.


 

 변태같은 전형이 있었던 것이다. (합격자의 10%를 언,외,사로 뽑는다는 미친 독소조항 - 지금은 없어졌지)


 

 나는 행복함을 감출 수 없었고, 부모님께 자랑했다.


 부모님은 내 생각보다 기뻐해주지 않았다.


 이제는 알 것 같지만, 그건 기뻐할 일이 아니라 고2때부터


 비인간적으로 노력해온 나에게 응당히 돌아온 보상이었기 때문이다.



 수학을 할 줄 모르는 내가 대학에서, 거기다가 경제학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재수를 시작할때와 마찬가지로, 처놀고, 술먹고, 알바하고, 와우하고


 그러다 군대를 갔고, 군대를 제대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수학공부를 시작했으며, 미적분이라는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고, 졸업 직전이 되었다.



 나는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모 공사에서 추천제 인턴을 하고 있는 나는


 큰 이변이 없는 이상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18살 이전의 나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누구에게나 전환점은 찾아오고,


 준비되거나, 그 전환점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기 기준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공부잘하고 똑똑하고 멋잇는 일베인이 볼 때,


 나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힘들고 찌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성공했다. 그런 생각이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줬다.



 나도 사람인 만큼, 영남대, 배재대 이런 대학생들에게 느끼는 첫감정은


 새끼 공부좀 열심히 하지,, 였다


 하지만 직장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볼 때,



 서울대생은 연고대생보다 우월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수능을 잘 친 사람뿐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공주대를 나온 부장 밑에서 나는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쌓아온 커리어를 폄훼할 수 는 없다.


 대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어드밴티지는 취업하는 그 순간까지다.



 그 이후는 자신이 만들어나가는 인생인 것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여야 한다.


 나보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은, 더 열심히 노력했음에 틀림없다.


 내가 한 노력을 알기에, 그들의 노력은 경탄을 감출 수 없을만큼 대단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병신같은 새끼가


 출신대학 간판으로 인간을 규정하는 놈들이다.



 우리는 명문대생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이 쌓아온 학식과 피땀어린 공부는


 우리가 나름대로 노력한 것을 훨씬 뛰어넘는 일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삶이다.


 내가 나의 삶에 충실하고, 나의 선에서 최고의 행복을 찾는 것.


 그게 인생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보다 나이많은 인생선배들에게 죄송하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의 입장을 모른다.


 나는 항상 내 인생 속에서 최고 연장자로 살아가고 있다.






출처: 일간베스트 저장소   한심한놈들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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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네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