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갤러 사캬임다 ㅇㅇ 일베한지는 좀 오래됨 ㅇㅇ 은 훼이크고 사실 낙겔 망하고 유입해서 이제 한 1년 됐나??? 잘 기억 안남...

 

 예전에 썼던거 여따 올려드림 . 요새 수능 썰 재수 썰이 유행같아서 ㅇㅇ

 

1. 2007년 3월 아주대 자연대 입학

뭐 이런 애들 많겠지만, 나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 한다는 소리만 들으면서 살아왔고, 당연히 수능이란 것을 나는 쉽게 해쳐 나갈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런지 내신을 국영수과사 말고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서 수시를 쓸 형편이 못 되었지. 고등학교 1학년때 전국 모의고사에서 0.1%라는 성적을 받아보고, "아 이정도로만 해도 SKY는 개껌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을 날려먹었어. 종합반을 다니다가 널널한 단과반으로 옮긴게 그당시 치명적인 실수였지. 친구들과 십이지천?이란 게임이엇나... 아무튼 그거랑 스타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따. 그래도 그당시 수학은 한양공대 석사하시는 분께 과외를 받고 있었고, 영어는 어렸을 적부터 놓아본 적이 없어서 늘 1등급 최상위였어. 하지만 이과에 가게 되자, 외국어 성적은 늘 96% 이상을 찍는 반면에 수리는 처참하게 떨어져서 고2 말쯤 되니 6등까지 받아봤어(물론 모의고사). 물론 그런 성적을 받게 된 이유는 내가 과외만 받고 따로 공부를 안해서 과외로 선행학습을 하게 되면 이전 내용을 까먹게 되거든. 그래서 모의고사를 받으면 하도 옛날에 배운 거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거야. 그래서 뭐 그냥 거의 백지로 내고 그랬지.

그러다가 고3이 되고, 어쩌다보니 여자친구가 생겼어. 여자친구는 전교2등이었는데, 늘 수학으로 불안해 했었어. 나랑 여자친구 둘다 외국
어와 과탐은 잘 하는데 수리가 늘 엉망이었지. 여친은 수학때매 울기도 했었어. 고2에서 고3 넘어가는 방학동안 국순길, 박호진, 최뭐시기 강사 직강을 들으면서 화2, 화1, 생1을 다 뗐어. 물론 개념을 뗀거지 기출까지 다 푼것도 아니고 문제를 다 푼것도 아냐. 

난 그때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알았어. 여자친구를 보면서.

여자친구가 왜 전교2등인지 알겠더라고. 같이 화2 국순길 수업을 듣는데, 예복습을 굉장히 철저히 하는 거야. 사실 예복습이라는 것이 독학의 연장선이거든. 그때 처음으로 느꼈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저렇게 일부러 찾아서 하는 것이 진짜 공부구나. 나는 그때까지 숙제하는 게 공부라고 생각했거든.

아무튼, 그렇지만 고3내내 나는 수학이 그다지 늘지 않았어. 그래도 고2때보단 공부를 한 편이었으니 고3이 되고나서 등급이 3등급까진 올랐어. 선행학습의 힘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 이상까진 오르지 않더라고. 그리고 공부를 하겠다, 하겠다 했지만 매일 친구들과 학교 끝나면 플스방 가서 위닝하고 그러느라 또 시간이 흐르고, 결국 수능날 처참한 점수를 받았지.

3/4/1 1/1/3 . 어느 정도 시험장에서 예상은 했지만, 수학점수가 굉장히 처참했어. 아직도 기억해. 표준점수는 109점이었고, 백분위는 
61%였어. 결국 전국 수험생중 거의 정확한 평균적인 수학점수를 받은거잖아? 그래도 재수를 하긴 싫었고, 결국 아주대를 썼지.



2. 2007년 아주대 생활.


처음엔 전혀 떨떠름하지 않았어. 그 당시 나의 학번은 07학번이었고, 주위에 98~02 학번 형들이 많았어. 그 학번 세대의 아주대 선배들은 대우 학번 세대라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거든. 그래서 그 분들을 보면서, 아 난 이런분들과 함께 소속되어 있구나. 전혀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라고 생각을 했지.

그러다가 어쩌다 보니 수시생들과 엮이게 되었는데, 수시생중에 한명이 나한테 묻더라고. "야야, ln x 를 미분하면 뭐냐?" 이 질문을 딱 듣고 뒤통수에
해머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 들었어. 내가 지금 이런 애들과 같이 공부를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이 아이들과 같은 레벨인 건가? 스스로 굉장한 배신감과,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들더라고. 그렇지만 어쩌겠어. 재수를 하긴 싫은걸.

 첫 학기 학점을 1점대를 찍었어. 수업도 안나가고 맨날 위닝만 하러 다니고 술먹고 놀러댕기고. 아주 개 난장판이었지. 집은 서울 송파쪽인데, 아버지가 경기대 수원캠 교수셔서 매일 학교 나가시면서 나도 태워주셨거든. 그래서 그런지 통학하는데 그다지 어려움도 없었어. 그래서 놀자판이었지. 집에도 안 들어가고, 밤새서 술먹고 놀고... 그런 삶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무미건조해지더라고.

그러다가 2학기가 되었어. 몇명은 군대를 가고, 내친구들도 슬슬 재수, 반수하는 애들의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지. 9월의 시작이니까. 재수하는 애들을 보면서 나도 재수를 했으면 어땠을까, 했지만 그것도 거기까지였어. 실천에 옮기지 않았지. 

뭐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그렇게 2학기가 끝났어. 학점은 3점을 넘었지만 재수강 할 것들은 산더미였고, 집에오면 하는 것도 없이 컴터부터 키고 FM하던가 리니지를 하던가 정말 소비적인 삶을 살았지..

그러다가 2008년 계기가 찾아왔어.



3. 2008년 변화의 시작.



일단 친구 하나가 경희대 한의대를 가게 되었어. 공부를 곧잘 하던 녀석이었는데 현역때 444를 맞고 바로 재수를 택했지. 08수능은 노무현 세대라 등급제였어. 친구녀석은 전부다 턱걸이로 올 1등급을 받았고, 경희대 한의대에 가게 되었어. 그때 녀석의 집에서 합격 조회를 함께 했는데 그 녀석의 얼굴을 잊지 못하겠어 아직도. 기쁨에 들떠 있었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기분이 얼굴에서 묻어나왔어. 그 녀석 어머니도 경원대 한의대 나오셔서 한의사시거든. 어렸을 적 부터 꿈이 경희대 한의대였는데 그 꿈을 재수를 하면서 이루게 되다니... 내심 굉장히 부러웠지. 말은 안했지만. 겉으로는 무당새끼, 기공파나 쏴라, 하면서 까댔지만 속으로는 부러워 죽는 줄 알았어.

어느정도 나이가 찼지. 대학교 2학년이니까. 슬슬, 군대 걱정도 해야되고 앞으로 뭐 먹고 살지에 대해 고민해야 했거든. 후배도 들어오는 나이잖아? 그때부터 내가 도대체 무엇을 햇나.... 고민이 되더라고.

그러던 와중 또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어. 연세대 원주 임상병리학과를 간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PEET 준비를 한다는 거야. 뭐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약대편입이 생긴다는 사실은 뜬구름처럼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준비하는 애는 처음 보았거든. 그것도 가까운 친구가 말이야. 게다가 PEET 시험은 그 당시로 치면 2년 뒤인 2010년 여름이 1회거든. 녀석은 2년 앞을 내다보고 시험을 준비하는 걸 바로 옆에서 보게 된 거지... (이 녀석은 지금 중앙대와 성대 약대를 둘다 합격함) 그리고 친구 하나 더... 대진대 전자과를 다니던 친구가 있는데 자퇴를 하더니 학점은행제와 각종 자격증을 따서 학사자격을 따겠다고 하더니 그걸로 학사편입이라는 걸 하려고 한다는 거야.

전부 내게는 생소한 것들이었어.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도 않고 있었고, 막연히 아주대 졸업해서 대학원가고 그래야지... 라는 생각밖에 없었거든. 하지만 친구들은 스스로 하나하나 밥상을 차려가고 있는 것이었어. 언뜻, 나도 편입이라는 것을 도전해볼까, 생각했지만 막연한 두려움에 너스레를 쳤지.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왔어.

5월. 외조부 기일.

아직도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해. 우리 외가가 좀 빵빵해. 큰외삼촌은 변호사에 고대 법대 향우회장이고, 그 딸은 서울대 국문과 나와서 기자하고있어. 이모부는 한 분은 서울대 나오셔서 OB라거사장이셨고 그 딸은 한명은 카대 의대, 한명은 서울대 의류학과야. 그 밑에 이모부는 고대 법대 나오셔서 청와대 정무실장을 지내시고 지금은 금감원 가계셔. 그 분 아들은 대원외고 나와서 지금 고대법대 다니는데... 나랑 동갑이야. 그리고 그 아래 이모부는 서울대 나오셔서 행시 합격하시고 지금 국정원에 계셔.

그런 틈바구니에 들어가게 된 거지. 사실 어렸을 적엔 외가와 교류가 그다지 없어서 외가에 간다 그러면 사람이 많아서 신났거든. 근데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나니까 그런 곳에 가니 괜스레 기가 눌리더라고. 그리고 그때 아버지를 보았는데, 아버지가 좀 기를 피지 못하시는게 느껴졌어. 아버지가 한쪽 팔을 못쓰셔. 그런데 대학 교수까지 치고 올라가셨으니, 대단한 가수성가지. 그래서 외가 식구들과 만나면 기싸움이 대단해. 그런데 아들이 이러니 말 다했지.

그러다가 큰외삼촌이 나보고 물으시더라고. 

"넌 뭘 하고 있냐?"

"글쎄요... 일단 대학원 가는 것은 생각하고 있는데... 편입을 할까 하기도 하고, 변리사 준비를 할까 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변명을 늘여놓고 있는데 

한마디 하시더라고.

"언제까지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 거냐?"

순간 큰 깨달음 같은 것이 왔어. 아 지금 내가 뭘 해야 되는 건가? 나는 왜 늘 친구들과 만나면 걱정거리를 늘어놓기만 하고 푸념을 하기만 하고 직접 실행에 옮기진 않는건가...


4. 2008년 6월 자퇴.


사실 전혀 수능을 다시 볼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공부해본 것이라고는 수능밖에 없었고, 자신 있는 것도 수능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아버지께 말씀 드렸어. 수능을 다시 보고 싶다. 그러셨더니 아버지께서 그제서야 웃으시더라고. 그러라고.

그래서 자퇴를 했어. 뒤를 없애려고. 그리고 송파 대성학원에 들어갔어. 나이로 치면 3수지. 대충 학원 시간표가 어땠냐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침 7시까지 등원해서 5시까지 수업듣고 저녁먹고 10시까지 자습이었을 거야. 아마. 일단 학원에 들어가면서 결심한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나만의 학습일정> 이었어. 학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동시에 내가 다른 진도표를 세워서 나가는 거야. 아직 나는 단 한 번도 독학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고, 고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어.

일단, 가장 시급한 것이 수학이었어. 정석을 펴 놓고, 개념을 읽으면서 동시에 스스로 머릿속에서 정리를 해가며 A4용지에 개념정리를 해나갔어. 10-가나는 필요한 것만 하고 수1 수2 미적까지 모든 걸 그렇게 개념부터 다시 공부했어. 그러다보니 느낀 것이 있었지. 

"아 내가 이렇게 개념이 모자랐었는데 문제풀이를 하고 있었던 건가?"

재수학원은 숙제가 적어. 가장 많은 숙제라고 해봤자, 단어 숙제고, 설사 숙제를 안해온다고 하더라도 때리지 않아. 그래서 정말 독학할 시간은 쪼개고 쪼개면 굉장히 많지. 

수학은 그렇게 개념을 정석을 통해 공부했어. 물론, 정석의 기본문제 유제 연습문제도 다 풀었지. 그러고 나서 내가 약했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완하기 시작했어.

독학의 가장 큰 이점은 바로 <나의 약점을 바로 알 수 있다> 야. 스스로 진도를 나가보면서 내가 어떤 부분이 약하고, 어떤 것을 모르는지 아주 정확하게 알 수 있어. 나같은 경우에는 확률 통계쪽과 지표가수, 그리고 공간도형과 벡터쪽이 약했기 때문에 그쪽을 집중적으로 개념정리를 하고 동시에 특강을 들었어. 굉장히 도움이 되었던 수업은 송파대성의 박기현 선생님이라는 분께 확률 통계쪽과 벡터, 공간도형을 배웠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 여태까지 내가 그냥 느낌으로 풀던 그 쪽 부분을 정확한 개념으로 접근하는데 도움을 주셨지.

그렇게 개념정리를 하다보니 여름이 훌쩍 가버렸어. 아. 내가 계속 수학 얘기만 해서 미안한데. 사실 언어랑 외국어는 내가 그다지 할 말이 없어. 언어같은 경우에는 5수 끝에도 결국 2등급을 받아버렸고,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지도 않아. 외국어 같은 경우에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렸을 적부터 영어를 조기교육을 받았어. 물론 외국에 나가고 그런 건 아니지만, 한 번도 떼어놓지 않은 것이 영어공부였기 때문에 솔직히 수능 외국어는 내게 쉬운편이었어. 늘 효자과목이었고. 재수를 하면서도 내가 한 거라곤 매일 등원하면서 이어폰꼽고 영어 듣기 파일 들은 것과, 자기 전과 기상 직후에 단어 40개씩 외웠어. 문제를 푸는 것도 그냥 숙제를 푸는 것 이외에는 그다지 하지 않았어. 그래서 외국어에 관해선 솔직히 할 말이 별로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수학 위주로 쓸게. 이해해줘.

아 과탐? 과탐은 솔직히 대학을 다니다 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화1 화2같은 경우에 정말 쉽게 느껴졌어. 이미 대학에서 유기화학, 물리화학, 분석화학, 무기화학까지 듣다가 자퇴를 한 것이기 때문에 솔직히 화1이 화2보다 어렵게 느껴졌어. 화1은 실생활 적용 과목이기 때문에 외울게 좀 많게 느껴졌거든.

아무튼, 위같은 이유로 앞으로 수학 위주로 글을 쓸게.


그렇게 9월이 되고 베이징 올림픽도 끝났고, 찬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니 슬슬 긴장이 되더라고. 당연해. 가을이 되면 긴장하는 게 수험생의 공통점이야. 

나는 이때부터 기출풀이에 들어갔어. 절대로 맹세하건에 이전까지 기출분석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기출 풀이라는 것도 그냥 N제를 풀면서 나오는 것들 여타 문제풀듯이 쉽게 푼 것 말고는 없었어.

학원에서 8개년 기출풀이집을 줘서 그때부터 그것에 매달렸어. 문제 하나 풀고 정리하는데 1시간이 걸리기도 했어. 왜냐하면 그 문제에 이용되는 모든 접근법, 그리고 모든 개념, 문제의 서술이 의미하는 바, 하나 하나를 모두 정리하고 메모하고 하다보니 그렇게 오래걸렸어. 물론 쉬운 문제는 그러지 않았지만 4점짜리 중에 간혹 아름다운 문제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분석을 했지. 그리고 틀리면 1. 내가 왜 틀렸나? 2. 실수 한 것은 없었는가? 3. 안 틀리려면? 이렇게 3가지를 항상 문제 옆에 기입했어. 그렇게 8개년 기출을 모두 분석했고, 풀이했고, 완성했어.

그렇게 9월 모의고사를 보았고, 처음으로 모의고사에서 수학을 1등급을 받아보았어... 내 기억으로 그당시 09 9월이 굉장히 어려웠던 걸로 기억해. 학원 애들도 나에게 몰려들어서 어떻게 공부했냐고 형형 거리면서 물어보기도 했고... 

그때부터 저녁을 빵으로 대체했어. 학원에서는 한솥도시락을 나눠주는데 그거 먹으니까 자습시간에 괴롭더라고. 졸려가지고. 그래서 빵과 우유를 먹으니까 좀 낫더라고.

그리고 그때부터 다시 한 번 개념을 돌리기 시작했어. 당연히 여러번 돌렸었던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돌리는데는 작은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고, 그리고 10월이 되었어.

10월에 난 학원을 그만뒀어. 아무래도 학원에 있다보니 독학할 시간이 충분치 않더라고. 그래서 학원을 그만두고 독서실을 다니기 시작했어. 아침 9시에 문을 열더라고. 9시부터 독서실에 나가서 언어 수리 외국어 과탐순으로 공부를 했어. 물론 거의 모의고사 풀이 위주였지. 거의 틀리지 않았어. 언어빼고는... 수리모의고사는 듄파와 만점마무리 그리고 친구가 추천한 삽자루를 풀었어. 이상하게 듄파와 만점마무리는 점수가 잘 나오는데 삽자루 모의고사가 점수가 잘 안 나오는 거야. 이유를 몰랐어. 왜그럴까... 아무튼 그렇게 11월이 찾아왔지.


듄파와 만점마무리를 확실하게 분석을 끝냈어. 공부하면서 모의고사에 있는 문제중 실제 기출과 연관이 있는 문제들을 스스로 편집해서 정리도 하고 그랬어. 그렇게 일종의 파일을 만들었고, 수능 1주일 직전부터는 그것만 보고 있었어. 실제 기출과의 연동을 알기 위해서였지. 그러다보니 당연한 결론이 도출되었어.

아. 수능은 돌고 도는 거였구나...


그때 깨달았어. 어째서 기출 분석을 하는 것인가? 흐름이 보이더라고. 느낌이 강렬하게 왔어. 아 이번 수능은 공간도형 문제가 Hell이겠다.... 그래프 해석 위주의 문제가 나오겠다.... 그때부터 그것들 위주로 공부를 할까 했지만 시간은 1주일밖에 안남았지. 불안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수능날이 왔고, 난 수능을 봤어.





5. 건대 수의대 입학



수능에서 약간 미끄러진 감이 있었어. 외국어는 역시나 1등급이 나왔지만 과탐같은 경우에는 처참하게 나왔어. 사실 그때 배가 좀 .. 굉장히 아팠거든 ㅋㅋㅋ... 그리고 수학도 역시나... 예상했던 것이 맞았어. 24번과 25번에서 처참하게 발리고 객관식도 그래프해석문제가 나왔지... 아마 그 해가 처음이었을 거야. 방정식과 부등식 파트를 그래프에 접목시켜서 굉장히 꼬아서 출제했던 것이... 느낌이 맞았지만, 어쩌겠어 이제 나이가 3수인데. 사실 아버지께서 말씀을 안하셨지만 한쪽 팔을 못쓰셔서 나를 의대에 보내서 이런 사람들을 돕게 하고 싶어 하셨어. 하지만 전혀 의대에 지원할 점수도 되지 않았고, 나는 기초 의과학과 줄기세포 연구를 하기 위해서 수의대를 썼어. 마침 그 해의 수의대는 역사상 가장 큰 빵꾸가 났고, 굉장히 좋은 선택이 되었지 ㅋㅋㅋㅋㅋ 

물론 예과긴 했지만 선배들과 얘기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동기들 교수님들과 얘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MD였어. MD의 필요성... 역시 의학을 배우지 않고서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어. 물론 황우석이 수의대출신으로 줄기세포를 연구하긴 했지만 그의 만행을 밝혀낸 것은 의학도들이었어. 그바닥이 그런거 같애. 철저한 배타사회거든. 

그래서 의학전문대학원을 생각했어. 그런데 아차... 싶었지. 학점을 관리해야하거든. 게다가 나는 6년제잖아? 친구녀석 07학번 서울대 의대 녀석한테 물어봤어. 의전 앞날이 어떠냐... 대답은 가혹하더라고. "야간 전문대 출신도 오는 게 서울대 의전이다. 무시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지 않느냐." 그래서 건대 수의대 출신으로 의전가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지. 그정도면 하기에 따라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 무섭게 학점관리에 들어갔어. 이미 한 번 배웠던 과목들이었지. 일반 화학, 일반물리학, 일반 생물학, Calculus ? 맞나? 아무튼. 그래서 학점이 4점이 넘었고,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어. 내 목표는 오직 의전이었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전신에 팽배했지.


6. 의전대 폐지.

사실 이런 말이 예전부터 있긴 있었어. 하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거든... 그러다가 2010년 4월이엇나... 5월이엇나... 뉴스를 보다가 그만 놀라고 말았지. 2014학년도 부터 의전을 점차적으로 축소시키기 시작해서 3대학 빼고는 전부 없앤다.... 계산을 해보니까 내가 지금 이 난이도의 MEET를 딱 한 번 볼 수 있는 것이고, 군대까지 고려한다면 아예 못 봐 버리는 거야... ㅅㅂ 그때부터 입에 아주 노무현 개새끼를 달고 살았지. 왜 의전을 만들어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갖고 노나..ㅠㅠ 이 일을 어쩌냐, 이 일을 어쩌냐... 

그러다가 8월 24일이야.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어. 병상에 누워계시다가 댁으로 들어오셔서 나 또한 장손으로써 당신 가시는 걸 옆에서 지키게 되었어. 나는 내 자초지종을 할아버지 앞에서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드렸고, 할아버지는 묵묵히 듣고 계시더니

"네가 건대에 입학한 것이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데... 그건 틀렸다. 네 노력한 것 이상으로 받은 것인데 어찌 그게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게냐? 그건 운이 나쁜거다. 사람이 이렇게 자만하게 되는데 그게 어떻게 운이 좋은 것이냐. 너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한 것이 맞냐?"

난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를 몰랐지.

그러다가 종이 하나를 찢어서 펜으로 적어주셨어. 

<운이 좋다는 것은 노력한 만큼 받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이틀 뒤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


아,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던가?


7. 2010년 9월 10일 5반수의 시작. 

학교를 휴학했어. 물론 자퇴하고 싶었지만, 나이도 나이인지라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예과 2학년인 나는 휴학을 했어. 일단 휴학을 하기 전에 나는 9월 모의고사를 풀어봤어. 등급은 2 1 1. 그것도 수리가 최상위 1등급이었어. 내 기억하기로 그때 1등급컷이 80점인가 그랬을 거야. 그런데 90점을 맞았더라고. 그 이유는 하나였어.

수의대에 입학하고 1년 반동안 학원에서 수학강사로 재직했거든. 물론 수업을 하면서 개념강의도 하긴 했지만, 문제풀이 수업도 했기 때문에 수도없이 문제를 풀어봤어. 그리고 특작 수학을 달고 살았어. 특작이 공부하는 방법에 따라서 효과가 천지차이거든. 일단 특작을 집필하신 분이 앞에도 말한 대성학원의 <박기현>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믿음이 갔지.

3수시절에 뒤늦게 깨달은 기출분석의 힘을 깨닫고, 다시 한번 6월 9월 기출을 분석하면서 특작을 함께 공부했어. 수학은 굉장히 어렵게 나오는 추세고, 다시 한 번 그래프 해석이 굉장히 중요했어. 모든 함수의 그래프를 다 한 번에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래프 연습을 했고, 상대적으로 쉬워진 경우의수와 확률통계는 비중을 줄였어. 그때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공간도형과 벡터를 달고 살았어. 

나의 삼수시절 치명적인 실수는 바로 절대적인 문제풀이의 양이었어. 그래서 그때부터 정말 미친듯이 문제를 풀었어.

사실, 나는 수능을 본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스스로 했어. 스스로 독학의 힘을 알고 있었기에, 다시 한 번 독학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모든 재수비용을 내가 부담하면서 공부했어. 집에서는 학교를 간다고 하고 8시에 나와서 독서실에 들어가서는 공부를 하다가 혼자 밖에서 점심을 먹고 밤에는 학원에 가서 애들을 가르쳤어. 아침부터 점심까지 수학 문제풀이에 매달렸어. 학원에 있는 모든 문제를 한달 만에 다 풀었던 것 같애. 일품, 수능특강, 메가스터디 N제, 미래로, 특작, 기타 잡다한 프린트들... 다 풀었어. 그리고 학원이 끝나고는 다시 독서실에 가서 언어와 외국어 과탐을 공부했고, 주말에는 지난번에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수리를 제외한 언어 외국어 과탐공부에 매진했어. 특히 외국어와 과탐에 매진했어.

외국어 같은 경우엔 9월 모의고사를 보고 느낀 것이지만 확실히 난이도 상승이 느껴졌어. 시간이 굉장히 부족했고, 특히나 빈칸 추론 문제가 턱없이 어렵게 느껴졌어. 하지만 나는 필히 효자과목인 외국어에서 점수를 따야햇기에, 수능특강 외국어 영역과 고득점 300제를 너덜너덜해질때까지 공부했어. 외국어 공부법은 딱히 묻지마. 내가 한 것이라곤 풀고 풀고 또 풀고, 나온 단어를 외운 것일 뿐이야. 구문 분석이라던가 그런 것은 하지 않았어. 진짜 한 달 동안 미친듯이 공부했고, EBS에 나온 모든 단어를 섭렵했어.

그리고 과탐. 난 내가 지난번에 왜 과탐을 망했는지 알았어. 바로 대학공부하던 그 습관때문이었어. 사실 대학공부같은 경우에는 개념의 흐름을 알고 공식 몇개 외우면 끝나거든. 그런데 수능은 다르잖아. 그걸 까먹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숨마쿰 라우데 화1 화2 생1을 사서 달달 외웠어. 물론 중간중간 대학과정 내용도 나오더라고. 하지만 대학공부를 해봤기에 어렵지 않았고, 특히 생1같은 경우에는 모든 걸 외웠던 것 같애. 사실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어쩌겠어. 그냥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노력하는 것 밖에 없었고, 딱히 인강을 찾아 듣는 것도 아니었어.

그리고 그 뒤에 과탐과 언어 기출 분석에 들어갔어. 사실 09수능때는 수리만 기출분석을 했었거든. 그래서 언어와 과탐을 이번에 한 번 해보자 해서, 시작했지. 하지만 언어는 눈에 띄게 느는 것이 없었어. 매일 점수가 계속 2등급 그자리였거든. 80점 중반~90점 초반. 그런데 과탐 기출 분석을 하기 시작하니 내가 외웠던 것 중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그리고 문제 유형, 그래프 유형 등 모든 것들이 정리가 되기 시작하는 거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공부의 시작은 암기야.

암기가 바탕이 되야 이해가 되고 습득이 되는 것이야.

헛된 바람 때문에 개념만 알면 되지 뭘 그러냐, 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어.

그렇게 매일매일을 독서실과 학원수업을 병행했고, 중간중간 과외도 가서 애들 가르치기도 했어. 물론 과외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수능 몇달 남아서 하던 과외와 학원을 그만둘 수는 없었거든,. 그래서 과외같은 경우에는 내가 까먹었던 개념은 없는지, 복습하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가르쳤어. 학원수업시간엔 어차피 문제풀이 위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 나한테 득이 되었지.

그렇게 10월이 가고 11월이 왔어.

학원은 계속 나갔지만 과외는 그만두고 내시간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어. 수리같은 경우에는 이번에 어렵게 나올 단원이 딱 보였어. 당연히 적분파트와 벡터였어. 나 스스로 수능 수리영역의 모든 개념을 A4용지에 정석을 보지 않고 정리해보았어. 모든 문제유형도 내가 다 생각해내서 정리했어.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아, 이정도면 되었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때 딱 할아버지 말씀이 다시 떠올랐어.

그래서 다시 내가 풀었던 문제들을 다시 풀고 또 풀었어. 특히 특작모의고사와 특작책. 그리고 기출을 번갈아서 풀었어. 그리고 마지막 일주일을 EBS듄파를 푸는 데 매진했어.

그리고 어떤 문제를 풀었을 때 스스로 수학은 되었다 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

EBS듄파 문제였는데... 직육면체에서 점 P와 점 S가 모서리를 따라 움직이는데 모래시계모양 같은 입체모양을 그리더라고. 그 입체의 부피변화율이었나, 부피를 구하라였냐... 했는데 아무튼 적분문제였는데 그걸 딱 5분만에 풀어냈어.

그때 이번 수능에 대한 자신감이 확 들었지.

정말 간단한 것이었어. 개념과 문제풀이. 내가 부족한것은 문제풀이였고, 내가 푼 문제집은 쌓여만 갔어. 독서실 서랍을 5번은 비우고 정리한것 같애. 


사실 공부하면서 몸이 많이 망가졌어. 결핵에 걸렸거든. 지금도 결핵약을 먹고 있어. 솔직히 내가 살면서 이렇게 공부해본적이 있나 싶어. 앞으로도 못 이럴것 같을 정도로... 70일가량을 불태웠어.



8. 수능

수능 날, 어머니께 도시락을 싸달란 말을 못했어. 왜냐면 수능 보는 걸 아직도 모르셨거든. 그래서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지. 그래서 본죽을 예약해놨어.

그래서 아침에 나가는데... 제일 친한 누나가 죽이랑 각종 필요한것들을 싸서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정말 울컥했지. 이자리를 빌어서 누나한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수능을 보면서 느꼇던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긴 그렇지만..

언어를 제외하곤 쉬웠어. 특히 수리와 외국어. 스스로 쉬웠다고 생각했기에 굉장히 쫄아 있었지. 왜냐하면 실수 하나라도 했으면 나는 앚가난다고 생각했거든.

집에와서 뉴스를 보니까 역대 최악의 난이도라는 말이 모니터 전체에 훤했어. 게다가 외국어영역... 솔직히 EBS에서 보았던 문제들이 태반이 나와서 승부가 빈칸에서 갈린다는 생각은 했어도 1등급 컷이 90점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나중에 말을 들어보니 빈칸에서도 굉장히 많이 틀렸지만 EBS문제에서도 틀렸다고들 하더라고... 

그래도 가장 큰 카타르시스는 수리에서 느꼈어.

가채점이었는데 4점짜린지 3점짜린지 모르겠는데 두개가 아리까리한 거야. 사실 답을 써오지 않았거든. 그래서 기억만으로 채점을 하는데 어쨋든 최하 93점 같더라고. 근데 각종 입시사이트의 컷을 보니까 

수리 1등급 컷 78점...


쾌거였어. 쾌거. 순간 눈물이 왈칵 났지. 하. 나도 그 경희대 한의대 간 친구녀석이 느꼈던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나도 그정도의 노력을 한 거구나...


그리고 실제 성적표가 나왔고

원점수 기준으로

88 / 97 / 95 / 47 / 47 / 46

을 받았어.

그리고

성적표에 100이라는 숫자를 보고 정말 날아 오를듯이 기뻤지.

아 드디어 ..


 

여기서부턴 자기 자랑밖에 더 되지 않으니까 이만 말을 줄일게.


저번에도 글을 쓴 적이 있지만...

내가 볼때 수능만큼 노력대비 결과가 좋은 것이 없어. 나도 나름 4년동안 사회생활을 해보았고, 여기저기 손 대본 것이 많아. 출판쪽에도 손을 대보았고, 고시쪽에도 손을 대봤었어. 물론 수기에는 쓰지 않았지만 말이야. 하지만 수능은 절대로 땀을 배신하지 않아. 여기서 말하는 땀은 당연히 엉덩이 땀이겠지 ㅋㅋㅋㅋ

카라 니콜이 말했잖아. 노력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것은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라고.

맞아. 그말이 맞아. 그런데, 수능으로도 자신의 노력을 만들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무얼해도 힘들다고 생각해. 뭐 100%는 아니지만...

앞으로 가슴에 새기고 살거야. 

<운이 좋다는 것은 노력한 만큼 받는 것이다>





출처: 일간 베스트 저장소   Sakya)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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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네스터